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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하현이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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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8-31 15:09 조회 3,08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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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보조기구센터를 찾아온 젊은 여성 있었다. “전동휠체어를 탈 수 없을까요?” 갑작스런 질문에 솔직히 당황했지만 그 간절한 눈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현이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실 하현이는 어려서부터 자세유지기구센터에서 맞춤형 자세유지기구를 지원받아 오랫동안 사용해 온 장기 고객이었다. 올해로 20살이 된 하현이는 대학에 당당히 입학했고 앞으로의 꿈도 많았다. 그런 만큼 어머니의 관심과 노력도 대단했고,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하현이의 도전도 남달랐다. 그 시기에 하현이는 수동휠체어 이너를 재 수정하기 위해 자세유지기구센터를 방문했는데, 우연히 같은 공간 안에 있던 보조기구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리곤 무턱대고 전동휠체어를 탈 수 없냐고 얘기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려였을까. 아무래도 장애상태를 봐서는 전동휠체어는 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현이의 당시 진단서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상기 여자 환아는 척수성근위축증으로 머리가누기가 부분적으로 가능하고, 앉기, 기기, 서기, 걷기가 불가능한 상태로서 앉은 자세 유지도 어렵습니다. 또한 합병증으로 심한 척추측만증(현재 136도의 콥씨 각 상태)으로 장시간 앉아 있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좌측 팔꿈치관절 탈구, 양측 수부의 근약증으로 수부기능이 많이 떨어져 연필잡기, 글쓰기 등이 어려워 규칙적으로 병원에서의 정밀 진찰과 관찰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좌측 팔꿈치 탈구로 인한 후유증으로 수부가 회전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햄스트링 근육의 단축으로 인하여 양측 슬관절의 굴곡 구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능과 언어는 정상적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척추측만증 수술은 2010년 3월에 시행 받았습니다. 수술 후 척추의 좌측 변위가 남아 있으며 골반의 변위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손가락 기능과 머리와 발 부분 등 전동휠체어 조작이 가능한 부분이 있는지, 테스트를 시도해 보았으나 어느 것 하나 컨트롤러를 움직이기에는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이런 경우 보통 전동휠체어 처방조차 나오기 어려우며 실제로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지형이 있는 국내 도로를 혼자서 돌아다니기에는 사고의 위험이 너무 높았다. 그러나 하현이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간절했다. 그리고 하현이 어머니도 하현이가 혼자서 전동휠체어를 움직이는 것을 꼭 보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일주일 후, 인하대학교 재활의학과 교수님이 함께한 자리에서 사례회의가 진행되었고, 우리는 무모한 도전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왼쪽 2,3번째 손가락을 약간 구부렸다 폈다 하는 동작만으로 컨트롤러를 작동하도록 개조해 보기로 한 것이다. 하현이는 차상위 본인부담경감대상자로 일반전동휠체어를 지원받기로 하였고, 보조기구센터에서는 컨트롤러 개조를 담당하고, 자세유지기구센터에서 자세유지기구를 무상으로 제작하기로 하였다.

11월 12일, 이제 지원받은 전동휠체어로 조이스틱 개조 일정과 과정을 상의하기 위해 하현이와 어머니께서 센터를 방문하셨다. 그러나 어머니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하현이가 최근 몸 전체의 근력약화가 진행되어 전신의 움직임이 어려워졌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더 제한적으로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었던 2,3번째 왼손가락은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조이스틱 컨트롤러를 단 한 번도 움직이지 못했다. 현재 상태로는 전동휠체어를 혼자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현이가 돌아간 후, 재활의학과 교수님께 자문을 요청했다. 마침 전날 병원에서 진료한 내용이 있어서 소견을 들어 보았는데, 가장 움직임 가능성이 높은 손가락이 중력을 이겨낼 근력 수준이 아니어서 사실상 처방은 어려우나 보조기구센터에서 기술적인 부분으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시도해보도록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하현이의 간절함이 우리뿐만 아니라 의사선생님의 마음도 움직였던 것 같다.

2015년 1월 7일, 두 달 간 전동휠체어에 자세유지기구 맞춤제작이 거의 끝나갈 무렵, 혹시나 그 사이 움직임이 호전되었을까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몸 전체와 손가락의 근력은 약해진 상태로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왼손가락을 이용해서 조이스틱 컨트롤러를 움직이되 미세한 움직임으로도 컨트롤러가 조작될 수 있도록 개조가 시작되었다. 램마운트 구입(35,000원)은 자부담으로 하고 나머지는 센터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컨트롤러 커버를 열고 노브 하단부에 위치한 스프링을 교체하여 tension을 줄이는 방법을 적용해 보기로 하였고, 처음엔 랩보드를 적용해 팔을 거치할 수 있도록 계획했지만, 적용과정에서 랩보드 사용의 필요성이 적어서 컨트롤러에 직접 팔이 닿을 수 있도록 구조를 변경했다.


2015년 1월 16일, 컨트롤러 거치대와 왼팔 거치대가 일체형이 되도록 제작되었다. 쉽게 탈부착이 가능하도록 조립해 어머니께서 직접 조작할 수 있도록 했고, 팔을 올려놓고 이동을 해도 흔들림이 없도록 고정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첫 번째 사용 훈련을 진행했다. 휠체어를 최저 속도로 설정을 하고 전후진과 회전 연습을 하도록 했다. 5분여 동안 센터 안에서 5m 정도의 전진만 가능했고, 좌회전과 우회전 그리고 후진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여전히 첩첩산중 갈 길이 멀었다.

1월 23일, 볼펜 몸체를 이용해서 노브 부분을 연장하고 컨트롤이 가능한지 훈련을 하였다. 최저속도에서 전진 컨트롤이 향상되었고 노틀담복지관 복도 한 바퀴를 약간의 도움으로 20여분 만에 완주하였고, 주차장 앞쪽 언덕 일부도 약간의 도움으로 전진이 가능했다. 전진과 우회전이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좌회전과 후진은 여전히 조작이 어려웠다. 비록 복지관 복도를 한 바퀴 도는데 도움도 필요했고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하현이 어머니는 “어머, 하현이가 혼자서 움직여요”를 연신 내뱉으시면서 한 손으로는 휴대폰 동영상 촬영을, 다른 한 손으로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셨다. 나 역시도 “가능할까?”하는 의구심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1월 30일, 컨트롤러 거치대 체결 위치를 발걸이 쪽으로 옮기고 팔을 편안하게 놓을 수 있도록 받침대를 버려진 플라스틱 조각을 구해 제작해 보았다. 자세유지기구센터에서는 오른쪽으로 자세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오른쪽 팔걸이 안쪽에 쿠션을 제작했다. 그리고 3번째 사용 훈련을 했다. 이번엔 속도를 3단과 4단으로 올려서 복도를 돌아보았고, 좌회전을 제외한 나머지 움직임에서 조작 능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약화된 근력의 변화는 거의 없는데 어떻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조작능력이 향상되었는지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하현이가 매일같이 볼펜을 잡고 움직이는 연습을 했더란다. 그래서 이참에 전동휠체어를 집으로 가져가서 일상생활 환경에서 사용해 보기로 했다.

2월 10일, 4번째 훈련 날이다. 하현이가 전동휠체어를 타고 센터로 왔다.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오긴 했지만, 혼자서 전동휠체어를 운전해서 왔단다. 여전히 좌회전의 정확성은 조금 떨어지고 속도도 많이 낼 수 없었고 돌발위험에 대비해 어머니께서 여전히 붙어 있으셔야 했지만, 하현이가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 움직일 수 있었기에 자신감과 희망이 있었고, 행복한 순간의 나날들이었다고 말씀하셨다.


2월 28일 토요일, 주말을 이용해 학교 기숙사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전동휠체어를 타고 평택으로 간다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하현이의 대학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정기적으로 연락을 해서 전동휠체어 사용 후기를 들어보기로 했지만 여전히 걱정 반 설렘 반이었다.

4월 13일, 하현이 소식이 궁금해 연락을 했다. 더 솔직하게는 전동휠체어 사용후기가 궁금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간간히 전동휠체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전적으로 사용하기엔 이동시간이 많이 걸려 가끔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강의실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서 커피숍에서 수다도 떨었다고 했다.

6월 19일, 하현이는 방학을 했고, 한 달 넘게 감기와 컨디션 난조로 누워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9월 4일, 2학기가 시작되었고 방학동안 컨디션이 좋지 않아 센터를 방문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많이 회복했고 다시 학교 기숙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아직도 연습과 훈련 과정은 계속되고 있다.

사실 전동휠체어 컨트롤러 커버를 열고 모듈에 달려있는 스프링을 교체한다는 것은 위험요소가 많다. 하현이의 장애상태는 보조기구센터가 있기 전이었다면 전동휠체어 처방이 나오기 어려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활의학과 교수님과 보조기구센터의 팀원들 그리고 자세유지기구센터의 팀원들까지 팀 접근이 있어 가능해졌다. 무엇보다도 하현이와 어머니의 노력이 있었던 덕분이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실적과 법적인 규제를 걱정해서 나름 안전장치를 한답시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본인이 결정했음을 명시한 동의서를 받았다. 그렇다고는 하나 무모한 도전을 했고, 여전히 사용하는데 위험도 따른다. 그러나 20살 하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움직였고, 앞으로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혼자서 해외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말에 어머니는 우셨다.

분명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지만, 하현이에게는 스스로 움직이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가능성도 있었다. 하현이의 담당자로서 그리고 보조기구센터의 팀장으로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보조기구서비스를 왜 하는가!, 누구를 위해 서비스를 해야 하는 것인가!, 보조기구센터는 규정된 매뉴얼을 따라 실적을 채우면 그만인가! 그 동안 이용자 한 사람 한 사람 더 관심 있게 바라보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해 보았다. 그리고 또 다른 부분에서는 제도적 제한으로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을 해 보았다.

혹여나 가능하다면 지자체 조례에서 개조 및 제작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그 내용 안에 본인 동의를 얻은 경우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개조 및 제작을 할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제안을 해보고 싶다.

오늘도 여전히 하현이는 휠체어에 오른다. 그리고 우리의 무한도전은 계속된다.